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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파리에 방문하는 친구들마다 가장 데리고 가고 싶은 미술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해요. 미술관의 이름은 좀 어려운데, Bourse de Commerce 부르스 드 코메르스(프랑스 발음: 부흑스 드 꼬멕스)예요. Bourse는 파리의 증권거래소를 말하고 de는 –의, Commerce는 상업이라는 뜻이니까 파리의 ‘상업거래소’란 말이겠죠.

왜 미술관이 상업거래소인가 싶지요? 

원래 이 공간은 파리 도심 레알(Les Halles) 지역에 있는 아주 오래된 역사적 기념물인 상업 거래소였어요. 이 역사적인 공간을 (구찌, 발렌시아가, 보테가베네타 등 세계 최대 명품회사인) 케링Kerring 그룹의 수장이자 미술품 경매사 크리스티의 오너인 프랑수아 피노가 렌트해서 자신의 소장품들을 전시하는 개인 미술관으로 리노베이션한 것이예요. 코로나 기간 이전부터 현대건축의 거장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다는 공사가림막이 제가 파리로 유학온 이래 한 3년 가량 계속 있어서 레알을 지나다닐 때마다 대체 저건 언제 지어지나, 지어지기는 하나 궁금했었어요.

저는 피노와 안도 다다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베니스의 미술관 푼타델라도가나Punta della Dogana)에 매료되었던 경험이 있어서 이 미술관을 파리에서 본다는 것이 설레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코로나를 지나고 드디어 21년 5월 22일에 개장을 했습니다! 그후 계절마다 한번씩은 방문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방문객들이 없었는데 소문이 나면서 요즘은 사람들이 줄을 늘어서 있네요.

1986년 역사문화재로 등록된 공간이라서 건물을 사지는 못하고 렌트한것같고 상업거래소를 상징하는 돔 천장은 철제 골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 강화유리로 보강하고 아름다운 빛이 쏟아지게 디자인했어요.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지름 29m의 너비, 높이 9m에 달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실린더, 전시장 바닥에서 빛이 들어오는 유리 돔 천장까지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이어진 원통형의 전시관이예요. 이름은 로통드(Rotonde)인데요 처음에 갔을 때 전시가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안도의 기하학적이고 미니멀한 노출 콘크리트 벽에 19세기 상업거래의 모습을 그린 프레스코화가 둘러서 그려있고 유리돔에서 빛이 쫙 들어오고 있었어요. 유리 돔 아래는 세계 무역의 장면들을 묘사한 아름다운 19세기 프레스코화를 마주할 수 있어요. 공간을 압도하는 이 프레스코화는 문화재로도 등재됐는데 총 넓이가 1400㎡로 5명의 예술가에 의해 제작되었고 프랑스 박물관 위원회의 인증을 받은 전문가 알릭스 라보의 복원팀이 20m 높이의 철근 위에서 작업을 진행했다고 해요.

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Tadao Ando Architect&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Photo Patrick Tourneboeuf

그리고 그 아래 우르스 피셔(Urs Fischer)의 극사실주의(Hyperrealism) 왁스 조각 시리즈들이 놓여있었는데, 3년을 기다린게 아깝지 않게 뭐라 표현할 수 없이 너무 압도적이고 근사했어요. 각기 다른 시대와 국적의 의자, 인물상, 고전주의 조각상을 왁스 소재로 재현한 피셔의 조각은 전시의 시작과 함께 점화되어 서서히 녹아내리도록 고안되었는데요(천재적인 발상아닌가요). 가장 정적인 예술 매체인 ‘조각’에 ‘소멸’이라는 시간성을 부여함으로 관객과 작품 간에 새로운 관계를 모색했다는데, 매일 매일 사그러져 가는 작품이라니... (제가 본 작품은 바로 그 시간에만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아요. 

© Urs Fischer Courtesy Galerie Eva Presenhuber, Zurich. Photo : Stefan Altenburger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iney et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그리고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제가 Hi! 인사하는 동물들이 있는데, 그 거대한 원형의 전시공간 위 난간에 앉아있는 비둘기들과 미술관 구석에서 사는 흰색 쥐예요. ㅎㅎ 

얘네들은 사실 살아있는 동물이 아니고 ㅋㅋ 작가들의 작품이예요. 현대미술을 정의하는 주요한 개념 중 하나인 유희성이 이 미술관의 예상치못한 곳곳에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배치되어있는데요,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비둘기는 19세기 상업거래소였을 때의 장면 그대로를 연출했다고 해요. 진짜 비둘기인줄 알았다가 작품이라 생각하니 더 멋졌어요.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비둘기

라이언갠더Ryan Gander(1976, 영국)는 런던에 거주하며 작업하는 작가인데, 그의 작품 I...I...I... (2019)는 갤러리 한쪽 흰벽 아래의 구멍에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는 말더듬이 애니메트로닉 마우스예요. 이 흰쥐는 “음...음... 나는...나는...” 말을 계속 머뭇거려요. 자기 의견을 남에게 말하지도, 자기 감정을 남에게 표현하지도 못하는 어떤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것 같아요. 지칠 때까지 버벅거리는 말을 반복하는 이 쥐에게서 희안하게도 뭔가 격려를 받아요

 
맨위 © Ryan Gander. Courtesy de l'artiste et Pinault Collection. Photo Aurélien Mole/ 맨아래 ©reasonjin

지난주에 가장 유모와 위트가 느껴졌던 작업은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의 My Room is a Fish Bowl이라는 작품이였어요. 물고기 모양의 다양한 헬륨 풍선들이 날아다니는 방은 마치 바닷속같았고 저절로 움직이는 피아노의 몽환적인 음악속에 묘하게 떠있는 풍선들은 감상자들이 잡고 던지고 움직이는대로 날아다녀요. 정말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 쉴 수 있는 세련된 벤치 등 건물 내부와 외부 가구는 부훌렉 형제가 맡아 디자인했어요. 너무 예뻐요. 퐁피두가 한눈에 보이는 창앞 벤치에 앉으면 이런 호사가 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번에 다른 전시를 또 올려볼께요!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 2 Rue de Viarmes, 75001 Paris, 프랑스

★★★★☆ ·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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